생로병사라고 나이가 들면서 질병(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때가 점점 잦아지는 것 같다. 보통 병에 걸리면 몸이 아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질병이 꼭 고통을 수반하는 건 아니다. 즉 고통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신체기능에 지장을 주는 병도 많은데, 특히 감각기관의 질병이 그렇다.


예를 들어 축농증에 걸려 냄새를 못 맡게 되면 불편하긴 하지만 고통은 없다. 하지만 회복되지 못한다면 곤란해지는데 좋은향을 맡을 수 없다는 상실감은 물론 상한 음식도 모르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체기능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꼭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신부나 승려가 발기부전이 될 경우 이중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물론 다른 질병으로 인한 증상의 하나일 수 있다). 반면 성생활을 관계유지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배우자(또는 애인)를 둔 남성에게는 발기부전이 심각한 질병이 된다.


한편 통증도 기능장애도 동반하지 않지만 종종 질병으로 취급되는 증상이 있다. 바로 대머리(남성형탈모)다. 물론 엄격히 말하자면 탈모는 기능장애일 수 있다. 즉 머리카락은 충격이나 햇빛, 추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위험성이 미미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좀 없다고 해서 별 문제는 안 될 것이다. 즉 대머리는 심리 측면의 질병이 아닐까.


남성형탈모는 많은 남성들의 주요 관심사다. '제대로 된 발모제만 만들면 돈방석에 앉는 건 물론 노벨상도 탈 것'이라는 농담반진담반 얘기도 있다. 가끔 어떤 물질이 발모효과가 있더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관절염치료제와 혈액질환치료제의 발모효과가 뛰어났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탈모와 발모의 과학에 대해 알아보자.


수염과 머리카락에 반대로 작용

머리카락을 포함해 우리 몸의 털이 나는 걸 보면 신비롭다. 아기가 태어나서 사춘기를 맞을 때 까지 우리 몸의 털로는 머리카락과 눈썹, 속눈썹, 코털, 솜털이 있다. 그런데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생식기 주변과 겨드랑이에 상당한 규모의 털이 나고 팔, 다리에도 털이 꽤 난다. 어떤 사람은 가슴에도 털이 난다. 그리고 주로 남성에서 수염이 난다. 이런 털을 남성형털이라고 부른다. 즉 발모에 남성호르몬이 관여한다는 말이다.

사춘기 소녀에서 나는 털도 남성호르몬 때문이라는 게 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때 여성호르몬이 왕창 나와서 그렇지 남성호르몬도 꽤 나온다. 사춘기 때 남성호르몬이 잘 안 나오는 '너무 여성적인' 소녀의 경우 음모가 나지 않거나(무모증) 거의 없는 상태(빈모증)가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느 부위의 털이냐에 따라 관여하는 남성호르몬도 다르다는 것.

예를 들어 환관(내시)의 경우 수염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음모나 겨드랑이 털은 그대로다. 수염이 나려면 남성호르몬 가운데 테스토스테론(고환에서 대부분을 만듦)이 있어야 한다. 반면 겨드랑이 털은 부신에서 분비되는 약한 남성호르몬인 DHEA가 주로 작용한다. 그런데 테스토스테론(정확히는 DHT)은 머리카락에는 정 반대로 작용한다. 즉 발모가 아니라 탈모를 촉진하는 것. 이런 현상은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도 알고 있었다. 그는 환관 가운데 대머리가 없다는 관찰을 남겼다. 이처럼 남성호르몬이 신체 부위에 따라 털에 정반대 작용을 하는 현상을 '남성호르몬 역설'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남성호르몬은 머리카락과 수염에 대해서 정반대로 작용할까. 수염을 만드는 모유두세포에서는 발모를 촉진하는 IGF-1의 생성을 자극하는 반면,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유두세포에서는 탈모를 촉진하는 TGF-β1, TGF-β2, dikkopf1, IL-6의 생성을 자극한다. 이처럼 발모와 탈모에 관여하는 신호메커니즘은 괘 복잡해서 아직까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획기적인 발모제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 발모제(또는 탈모억제제)가 이미 여럿 나와 있고 이 가운데 두 가지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까지 받았다. 다만 작용이 발모제라기보다는 탈모억제제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이미 선을 넘어선 사람들로서는 별 소용이 없는게 현실이다. 아무튼 이 가운데 FDA 승인을 받은 두 약물에 대해 알아보자.



복용군은 7% 증가 대조군은 13% 감소

먼저 미녹시딜(minoxidil)로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이 있어 1970년대 고혈압치료제로 시장에 나왔다. 그런데 많은 환자들에서 다모증, 즉 털이 많이 나는 부작용이 나왔고 연구자들은 이로부터 발모제 가능성을 검토했다. 처음에는 먹는 약으로 임상을 했지만 부작용으로 저혈암(고혈압치료제이므로)이 보고되자 바르는 약으로 제형을 바꾸었다. 1984년 첫 임상이 실시됐고 남성형탈모환자의 60%(5명에서 3명)에서 발모효과가 나왔다.

두피마사지를 하면 혈액순화이 잘 돼 탈모가 예방된다는 얘기가 있지만 미녹시딜의 효과를 혈관확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추가 연구를 통해 미녹시딜이 혈관생성과 세포분열촉진, 항남성호르몬작용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미녹시딜의 효과는 개인차가 큰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약물 자체가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는데 있다. 즉 세포로 들어온 미녹시딜은 황산전달효소에 의해 황산미녹시딜로 바뀌어야 작용을 하는데, 사람에 따라 두피의 효소 수치에 편차가 크다. 즉 황산전달효소 수치가 낮은 사람은 미녹시딜을 발라야 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피나스테라이드(finasteride, 상품명 프로페시아(Propecia))는 탈모 메커니즘에 입각한 치료제다. 탈모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남성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이 아니라 DHT이다. DHT는 5-α환원효소2가 테스토스테론을 변화시켜 만든다. 이 효소는 두피모낭과 전립선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피나스테라이드는 5-α환원효소2의 억제제다. 즉 테스토스테론이 DHT로 바뀌지 못하게 해 탈모를 억제하는 것이다.

피나스테라이드는 1997년 FDA의 승인을 받았는데, 임상데이터를 보면 꽤 흥미롭다. 즉 약을 복용하고 1년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발모도 일어나고 그 뒤로는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 위약을 먹은 대조군은 안타깝게도 머리카락 밀도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한 임상결과를 보면 192주(약 4년)가 지났을 때 복용군은 모발개수가 7.2% 늘어난 반면 대조군은 13%나 줄어들었다. 한편 약을 먹으면 모발이 어느 정도 굵어지기 때문에(반면 대조군은 갈수록 가늘어진다) 실제 효과는 복용군이 21.6% 더 풍성해 보이고 대조군은 24.5% 더 빈약해 보인다. 한 논문에 실린 일란성쌍둥이 사진을 보면 대조군이었던 사람의 정수리가 훨씬 비어 보인다.

그럼에도 피나스테라이드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꽤 있는데 바로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기능에 악영향을 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약을 먹으면 남성호르몬이 안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여러 남성호르몬 가운데 하나(테스토스테론)가 다른 유형(DHT)으로 바뀌는 효율만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임상결과를 보면 복용군에서 2%만이 성기능장애를 호소했다(대조군은 1%). 그나마 이 결과도 노세보(nocebo), 즉 부작용을 예상한 결과 그렇게 느끼는 심리적인 부작용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다만 피나스테라이드 역시 초기에만 발모효과가 반짝 있을 뿐 그 뒤로는 탈모억제제로 작용하므로 때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별 매력이 없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된 발모촉진물질은 위의 두 가지 약물에 비해 발모제로서 잠재력이 더 커 보인다. 즉 모낭의 줄기세포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이다. 원래 이 연구는 원형탈모에서 출발했다. 원형탈모는 남성형탈모(대머리)와는 발병메커니즘이 좀 다른데,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게 밝혀졌다. 즉 면역계가 착오를 일으켜 모근을 공격해 털이 빠지는 것이다.

2014년 미국 컬럼비아대 피부과 안젤라 크리스티아노 교수팀은 역시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관절염의 치료제인 토파시티닙(tofacitinib)과 골수섬유증의 치료제인 룩솔리티닙(ruxolitinib)이 원형탈모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발표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이들 약물이 면역계인 T세포와 인터류킨-15가 관여하는 JAK신호전달체계를 방해해 자가면역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서 원형탈모를 치료한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추가 연구를 통해 JAK신호전달체계가 면역계와는 별개로 모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JAK와 STAT경로가 활성화되면 모낭에 있는 줄기세포가 잠복기에 들어가는데, 이들 약물이 JAK-STAT경로를 억제해 줄기세포가 깨어나면서 발모가 촉진된다는 것. 쥐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에서 극적인 효과를 보인만큼 실제 임상에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털이 빠져서 고민인 사람도 있지만 털이 많아 성가신 사람들도 있다. 요즘 젊은 여성 대다수는 겨드랑이 털을 깍고 팔 다리에 털이 많을 경우 면도를 하거나 뽑기도 한다. 그러나 면도를 하면 털이 굵어지고 뽑으면 나중에 더 무성하게 난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착시(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것이므로)이면 기껏해야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생명과학분야의 학술지 '셀' 2015년 4월 9일자에는 이들 속설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멀쩡한 털을 뽑을 경우 더 무성하게 털이 난다는 게 동물실험으로 입증된 것.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쳉밍 추옹 교수팀은 생쥐의 털을 뽑았을 때 재생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먼저 털을 드문드문, 즉 지름이 2.4밀리미터인 영역에서 50개 미만을 뽑았다. 그 결과 생쥐의 피부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즉 털이 뽑힌 모낭은 손상된 상태 그대로였다. 털이 뽑힌 빈도가 낮아 전체적으로는 피부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털을 뽑는 빈도를 높였다. 즉 지름이 2.4밀리미터인 영역에서 200개나 뽑은 것.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털이 뽑힌 자리(모낭)에서 다시 털이 자라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쉬고 있는(털이 빠진 상태) 모낭에서도 새로 털이 자란 것. 그 결과 털 200개를 뽑은 곳에서 최대 1200개가 새로 나왔다. 사진을 보면 털을 뽑았던 자리가 주변보다 털이 더 무성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털이 뽑혔을 때 모낭은 손상을 알리는 신호물질 CCL2를 내놓는다. 뽑힌 털이 많지 않을 경우 이 신호가 미약해 생리반응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런데 털이 뽑힌 모낭의 빈도가 어느 선을 넘게 되면 이 신호가 합쳐져 우리 몸은 피부가 손상을 입었다고 판단해 이를 복구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는 것.

즉 M1대식세포라는 면역세포가 발모가 일어난 피부로 몰려오면서 모낭의 줄기세포를 자극하는 물질을 내놓고 그 결과 줄기세포가 왕성하게 분영하면서 새로운 털이 자라기 시작한다. 이때 자연과정(모낭에서는 털이 성장기, 퇴행기, 휴지기를 거치며 자라고 빠지는 순환을 한다)으로 모발이 빠져 쉬고 있던 모낭도 덩달아 자극을 받아 한꺼번에 발모가 일어나는 것.

이 연구결과는 털을 뽑아 제모를 하는 여성들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반면 탈모로 걱정이 많은 남성에게는 탈모를 역전시킬 '과격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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