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사이언티스트'라고 영국에서 발행되는 과학주간지가 있다.  2008년 9월 13일자 기사에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당뇨병 만연이 오염물질 때문이라는 주장을 담은 특집기사다. 경북대 의대 이덕희 교수에 대한 인터뷰성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만연한 당뇨병은 비만이 주요원인이라고 여겨지는데, 이 교수는 진짜 숨은 원인은 팝스(POPs)라는 약어로 불리는 잔류성유기오염물질 때문임을 밝힌 연구결과를 2006년부터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즉 단순히 비만인 사람이 당뇨병에 걸리는 게 아니라 비만도와 체내 팝스 농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즉 정상체중이라도 팝스 농도가 높은 사람은 비만이면서 팝스 농도가 낮은 사람보다 당뇨병에 걸릴 위험성이 더 높다.


이덕희 교수가 '호메시스'란 책을 냈는데, '건강과 질병의 블랙박스'라는 부제에서 짐작하듯이 건강과 질병에 대한 기존의 의학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호메시스(hormesis)란 우리 몸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진 것이 낮은 농도(또는 약한 정도)에서는 오히려 몸에 유익하게 작용하는 현상이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왔는데, '자극하다' '촉진하다'라는 뜻이다. 이 교수가 호메시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팝스와 관련된 실험 데이터 가운데 해석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팝스의 농도가 아주 낮은 범위에서는 체내 농도가 높아질수록 질병발생위험도 높아지지만(이 교수의 논문들), 팝스의 농도가 이보다 더 높을 때는 위험이 더 이상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든다는 실험결과들이 여럿 나왔다. 물론 팝스의 농도가 아주 높으면 치명적이 된다. 가로축을 농도, 세로축을 몸에 미치는 영향(+는 긍정적 -는 부정적)인 그래프를 그리면 대략 'U'를 뒤집은 모양이 나온다.


처음엔 이런 결과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데이터가 쌓이다보니 이 교수도 열린 마음으로 고민을 시작했고 마침내 호메시스라는 현상을 알게 된 것. 즉 팝스의 체내농도와 건강의 기묘한 그래프는 호메시스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책에서 쉬운 비유를 들어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견고하게 지어진 100층짜리 건물에 폭탄 100개를 떨어뜨리면 건물은 무너진다고 하자. 만일 1000개를 떨어뜨리면 더 빨리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 한두 개를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떨어진 곳은 좀 피해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지나간다. 그렇게 가끔 한두 개씩 떨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건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폭탄 열 개가 한꺼번에 터지면 어떻게 될까. 건물 관리자는 바로 문제를 알아 차려 수리에 들어가고 이 과정에서 몰랐던 문제까지 같이 개선될 수도 있다.


바로 호메시스가 작동하는 원리다. 즉 우리 몸이 미약한 스트레스(이 경우 아주 낮은 팝스 농도)를 인지하지 못해 대응하지 않으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서서히 망가지지만 스트레스가 어느정도 이상이 되면 스트레스 대응체계를 가동시켜 적극적으로 몸을 지키게 된다.


그런데 팝스에 호메시스를 적용하면 또 다른 딜레마가 생긴다. 즉 팝스로 인한 위험을 줄이려면 오히려 팝스의 농도를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위험한 해결책으로, 팝스의 작용은 너무 복잡하고 상호 모순되는 데이터도 많아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 교수에게 호메시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즉 팝스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이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이 교수는 호메시스를 적용해 능동적으로 팝스에 대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 즉 우리 몸에 팝스보다 '안전한' 스트레스를 주면 몸의 대항력이 높아져 미량의 팝스로 인한 질병도 예방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안전한 스트레스를 통한 호메시스 활성화 방법은 무엇일까.



하루 서너 잔의 소주는 뇌졸중을 예방

서울대 배희준 교수팀이 학술지 '신경학'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하루에 소주를 몇 잔 마신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뇌졸중 위험성이 더 낮았다. 즉 하루 한 잔(알코올 10g)은 62%, 두 잔은 55%, 서너 잔은 46% 더 낮았다. 반면 여성은 하루 한두 잔까지만 효과가 있었다.

적당한 음주가 건강에 더 좋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좀 다르다. 즉 '프렌치 패러독스'로 알려진 현상의 경우, 프랑스사람들의 심혈관 질환이 적은 이유가 레드와인의 라스베라톨이라는 성분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소주는 물탄 알코올(에탄올)이다. 즉 소주의 뇌졸중 예방 효과는 알코올의 호메시스 작용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에탄올은 효모가 주의 미생물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 내는 독소다. 과음을 할 경우 사람도 배겨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 반주로 소주를 몇 잔 마시면 오히려 우리 몸의 스트레스 대응체계를 자극해 건강에 이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책에서 이 교수는 라스베라톨 같은 식물성분(이를 파이토케미컬(phytochmical)이라고 부른다)이 인체에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도 호메시스 작용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이토케미컬이 몸에 좋은 건 널리 알려진 것처럼 항산화효과 때문이 아니라 거꾸로 적당한 산화스트레스를 일으켜 우리 몸이 호메시스 반응을 시작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라는 것. 즉 우리 몸에서 파이토케미컬은 팝스와 같은 맥락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파이토케미컬이 고농도에서는 독으로 작용하지만, 다행히 우리가 먹는 식물 대다수에는 그 정도로 먹기 힘들 정도로 농도가 낮게 들어있다.

햇빛(자외선)도 호메시스 방응을 일으킨다. 요즘 외모(노화)에 워낙 민감하다보니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고 야외에 나가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교수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이 걱정할 건 오히려 자외선 부족이라고 한다. 즉 자외선이 있어야 비타민D가 합성되는데, 사실상 호르몬인 비타민D는 우리 몸이 스트레스 대응반응을 할 때 꼭 필요한 성분이다.

운동의 효과 역시 호메시스로 설명할 수 있다. 운동을 하면 산소 소모(체내 산화반응)가 늘어나고 따라서 활성산소도 늘어난다. 따라서 산화스트레스는 해롭다는 관점에서 운동은 백해무익일텐데 알다시피 요즘 주로 걱정하는 건 운동부족이다. 그럼에도 운동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운동을 하다 다친 사람들 덕분에 정형외과가 먹고 산다는 농담도 있듯이 운동이 지나치면 각종 안전사고는 물론이고 관절염, 근육염 등 몸이 손상된다. 즉 운동 역시 몸에 적당한 스트레스를 줄 정도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이 교수의 책 3부 '우리를 둘러싼 이슈들'을 보면 소위 '의학상식'이라고 알려진 여러 이슈들에 대한 이 교수의 '삐딱한'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비타민보충제가 과연 건강에 좋을까? 소금을 적게 먹을수록 좋은 것일까? MSG가 그렇게 몸에 해로운가? 같은 얘기들이다. 이 교수의 입장이 어떤지는 얘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처럼 비상식적이고 과격한 의학가설을 즐기는 이 교수이지만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건강의 비결은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다. 즉 골고루 잘 먹고(다만 채식의 비율을 높여) 햇빛을 충분히 쬐고 운동을 적당히 하라는 것. 즉 우리 몸의 호메시스를 최대한 활용하는 길은 의외로 쉽고 큰돈이 안 든다는 말이다. 물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평범한 생활습관을 실천하는게 쉽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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