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잭슨연구소의 연구자들은 특이한 돌연변이 생쥐를 얻었다. 이들은 식욕을 주체하지 못해 고도비만이 된 이 녀석에게 뚱보(obese)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줄여서 ob생쥐라고 불렀다. 이 형질은 열성으로 유전됐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식욕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고장 난 결과라고 추측했고 이 유전자를 찾기 시작했다.


오랜 노력과 치열한 경쟁 끝에 1994년 미국 록펠러대 제프리 프리드먼 교수팀이 마침내 생쥐의 6번 염색체에서 ob 유전자를 찾는데 성공했다. ob 유전자는 아미노산 167개로 이뤄진 작은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었고 생쥐의 몸에서 이 단백질을 추적한 결과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이 호르몬에 '마르다'는 뜻의 그리스어 렙토스에서 따온 '렙틴(lept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쥐(물론 사람도)가 먹이를 먹으면 지방세포가 렙틴을 분비하고 렙틴이 혈관을 타고 뇌로 들어가 식욕중추인 시상하부에 도달해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식욕이 떨어져 그만 먹게 된다. 다이어트 시장의 혁명을 예감한 미국 생명공학회사 암젠은 프리드먼 교수에게 2000만 달러 (약 230억원)를 지불하고 독점사용권을 얻었지만 이어진 임상에서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비만인 사람들에게 인슐린 주사를 맞는 수준으로 외부에서 렙틴을 넣어줘서는 약발이 안 들었다.


암젠의 입장에서는 낭패였지만 렙틴의 등장은 비만을 심리(의지)의 문제에서 생리(호르몬)의 문제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뒤 식욕에 관여하는 여러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발견됐다. '먹어야 사는' 동물의 숙명을 생각할 때 식욕이 이처럼 복잡하게 조율되는 건 수긍이 되는 일이다.



23년 전에 발견된 단백질

학술지 '네이처' 2017년 3월 16일자에는 영향력에서 렙틴에 버금가는 새로운 식욕억제호르몬을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컬럼비아대 스타브로울라 코우스테니 교수팀은 뼈의 조골세포(osteoblast)가 분비하는 리포칼린2(lipocalin 2, LCN2)가 시상하부에 있는 수용체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리포칼린2는 새로운 단백질이 아니다. ob 유전자와 그 산물인 렙틴이 밝혀진 1994년에 리포칼린2의 존재도 보고됐다. 23년이 지난 이제야 식욕억제호르몬이라는 실체가 밝혀진 건 그동안 초점이 면역 분야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리포칼린2는 선천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즉 박테리아가 침투하면 면역세포인 호중구가 리포칼린2를 내놓는다. 리포칼린2는 박테리아가 철을 흡수하기 위해 분비하는 사이트로포어(siderophore)를 붙잡아 없앤다. 그 결과 박테리아의 증식이 억제된다. 2004년 면역학자들은 리포칼린2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를 만들었지만 그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비만이라는 데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컬럼비아대 코우스타니 교수팀은 내분비기관으로서 뼈를 재조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방세포가 렙틴을 비롯해 여러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게 밝혀지면서 지방이 단순히 저장기관이 아니라 내분비기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듯이 최근 뼈에서도 오스테오칼신(osteocalcin)과 FGF23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뼈의 새로운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연구팀은 뼈에 또 다른 호르몬이 있나 알아보다가 뜻밖의 월척을 건진 것이다.

렙틴과 마찬가지로 생쥐가 밤새 굶으면 혈액 내 리포칼린2 수치가 뚝 떨어진다. 그러나 먹이를 먹으면 수치가 세 배 정도 늘어나고 한 동안은 섭식 활동을 하지 않는다. 16주 동안 혈중 농도가 평소의 두 배가 될 정도로 매일 리포칼린2를 주사해 그렇지 않은 생취에 비해 먹이를 18% 덜 먹었다. 그 결과 체지방이 32% 적고 몸무게도 9.4% 덜 나갔다. 사람으로 치면 매일 리포칼린2을 10밀리그램씩 주사한 셈인데, 이런 효과가 재현될지 궁금하다.

연구자들은 리포칼린2 역시 혈관을 타고 식욕중추인 시상하부에 도달해 작용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확인실험을 했는데 정말 그랬다. 즉 시상하부에 있는 MC4R이라는 수용체에 달라붙어 식욕억제회로를 작동시켰다. 흥미롭게도 아동비만의 5%, 성인비만의 0.5~2.5%가 MC4R 유전자의 변이형과 관련돼 있다. 즉 리포칼린2의 식욕억제신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과식한 결과 비만으로 이어진 사람이 꽤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방조직에서 식욕억제호르몬을 분비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뼈에서도 식욕억제호르몬을 분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모른다면서도 체내항상성 유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즉 골 질량의 증감과 리포칼린2 유전자 발현량이 연동돼 몸이 영양을 필요로 하는지 여부를 알려줘 이에 맞는 행동을 하게 유도한다는 말이다.

체온조절에 관여하는 렙틴과 우리딘

한편 학술지 '사이언스' 2017년 3월 17일자에는 굶주림 신호 분자를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데 필립 셰러 교수팀은 굶주릴 경우 지방세포가 우리딘(uridine)을 분비해 몸이 대응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혈중 우리딘 수치가 올라가면 체온이 떨어지고 산소 소모량이 감소한다. 몸의 대사율을 낮춰 최대한 버티기 위해서다. 영양을 섭취하면 혈중 우리딘 수치가 내려가고 체온이 회복된다.

물론 포유동물 같은 정온동물에서 이런 온도 변화의 폭이 크지는 않다. 예를 들어 생쥐를 24시간 굶길 경우 체온이 1.8도 정도 내려간다. 그러나 체온을 유지하는데 에너지가 꽤 들기 때문에 기준이 이 정도만 내려가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딘의 에너지 항상성 조절에 렙틴이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렙틴은 식욕을 억제할 뿐 아니라 우리딘의 작용도 억제한다. 지방세포는 굶주릴 때는 우리딘을 배부를 때는 렙틴을 분비해 항상성을 맞춘다는 말이다. 렙틴을 못 만드는 ob 생쥐의 경우 평소 혈중 우리딘 수치가 높고 24시간 굶을 경우 체온이 무려 7.3도나 떨어진다.

비만인 동물이나 사람에서 체온조절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가 많은데 렙틴과 우리딘 회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영양을 충분히 섭취했음에도 혈중 우리딘의 수치가 신속히 떨어지지 않으면 대사율이 올라가지 않아 체온이 빨리 회복이 되지 않고 그만큼 에너지를 덜 쓰게 돼 비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몸이 찬 사람은 살찔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우리딘은 앞에 소개한 리포칼린2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려진 분자다. RNA의 네 염기 가운데 하나인 우라실(uracil)에 오탄당인 리보오스가 붙은 게 바로 우리딘이다(이런 구조를 뉴클레오시드(nucleoside)라고 부른다). 우리딘에 인산기가 붙은 UTP(이런 구조를 뉴클레오티드(nucleotide)라고 부른다)가 RNA분자를 만들 때 쓰이는 벽돌이다.

 사실 신호분자로 유명한 뉴클레오시드는 아데노신(adenosine)이다. RNA와 DNA를 이루는 염기의 하나인 아데닌(adenine)에 리보오스가 붙어 있는 아데노신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로 뉴런이 피로해졌을 때 이를 회복시키는 작용을 한다. 일을 많이 하면 피곤하고 졸리는 것도 뇌세포에 아데노신 농도가 높아진 결과다. 뉴런의 아데노신 수용체에 달라붙어 이런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이 바로 카페인이다. 커피를 먹으면 한동안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이유이다.

문득 의지보다는 몸 속 호르몬과 신호분자가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식욕은 물론이고 성욕, 수면욕, 심지어 모성까지 행동의 동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 분자와 만나게 된다. 물론 의지로 욕구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도를 닦지 않는 이상 늘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연구들을 접할 때마다 특정 호르몬이나 신호분자가 지나치거나(또는 수용체가 민감) 부족한(도는 수용체가 둔감) 유전형을 지닌 결과 사회적 기준에서 정상이라는 범위 밖의 욕구를 지니게 되고 그 결과로 이어진 행동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될 것 같아 안타깝다.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의 행동도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관용을 보여야하지 않을까.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우리나라 말이 속해있는 알타이어에는 '녹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즉 '파랗다' '푸르다'를 파란색과 녹색에 구분없이 쓴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풀'에서 '푸르다'가 나온 것 같고 따라서 푸른색이 녹색 아니냐 하겠지만, '푸른 하늘' '파란 새싹' 같은 표현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런 현상은 같은 알타이어인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수천 년 전 한자가 들어오면서 '녹색'이라는 한자어가 이 공백을 메워서 엄밀하게 풀의 색을 얘기해야 할 때는 녹색이라고, 하늘은 청색이라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한자가 들어오기 전 알타이어를 쓰는 사람들은 녹색과 파란색에 대한 식별능력이 각 색을 나타내는 별개의 단어가 있는 사람들에 비해 둔감하지 않았을까.


사물의 이름에 대해서도 비슷한 예가 있다. 영어로 drop, bubble, foam은 각자 뚜렸이 구분되는 물리적 실체에 대한 이름이다. 즉 drop은 공 모양의 액체이고 bubble은 속이 빈 공 모양의 액체막이고 foam은 bubble이 여럿 모인 상태다. 그런데 우리말은 좀 애매하다. drop은 방울, foam은 거품인데, bubble은 방울이라고도 부르고 거품이라고도 부른다. 즉 우리말에서 거품은 '속이 빈 방울'이라는 뜻이 있어 비누거품을 비눗방울이라고 써도 된다. 그런데 방울은 공 모양의 형태에만 쓰므로 foam은 거품이지 방울은 아니다. 즉 방울은 개별 거품에 한해서 상위 개념이다.


왜 이렇게 번잡한 얘기를 하는가 하면 지금부터 거품의 물리학을 다룰 텐데 bubble과 foam을 둘 다 거품이라고 번역하면 헛갈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거품은 foam을 의미하고 구성단위인 bubble은 '비눗방울' 또는 '방울'이라고 이야기한다.


거품은 꺼질 운명의 존재

드라마에서 소주나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은 자연스러운데 맥주를 마실 때는 영 어색하다. 유리잔에 보리차를 담았는지 연갈색 액체 위에 거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잔에 맥주를 막 따르면 거품 층이 꽤 두꺼운데 잡담을 나누다 잔을 들면 거품이 많이 꺼져 있다. 거품을 이루는 방울이 터져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맥주를 잔에 따르는 것 같은 급작스러운 외부 교란으로 생성된 거품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기 마련이다. 거품이 있는 상태가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즉 액체는 표면적을 줄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이를 표면장력이라고 부른다) 표면적이 많이 늘어난 상태인 거품이 꺼지는 것이다. 순수한 물은 세게 저어도 거품을 만들기가 어렵다. 물분자의 표면장력이 워낙 커서 거품이 만들어지자마자 깨지기 때문이다. 반면 비누나 샴푸, 맥주 같은, 표면장력을 낮춰주는 계면활성제가 녹아있는 수용액은 거품도 잘 생기고 오래 유지된다.

물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거품의 구조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거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구조를 볼 수 있는데, 즉 인접한 비눗방울들은 막(lamella)을 공유하고 있고 막 3개가 만나는 선분이 있다(막 2개나 4개 이상이 만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막사이의 각도는 120도 내외다. 또 선분 4개가 한 점에서 만난다(역시 3개나 5개 이상이 만나는 경우는 없다). 이 선분을 '플라토 경계(Plateau border)', 이런 관계를 '플라토 법칙(Plateau's laws)'이라고 부르는데, 이 현상을 발견한 19세기 벨기에의 물리학자 조셉 플라토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렇다면 거품은 어떤 과정을 통해 꺼질까. 비눗방울로 이뤄진 거품을 자세히 보면(면도 거품이나 카푸치노 거품은 너무 작아서 이런 현상이 안 보인다) 투명한 막 표면에서 무지개색이 일렁 거린다. 이런 무지개색은 색소 때문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빛이 막을 투과하고 반사할 때 일어나는 간섭 때문이다. 즉 바깥쪽 막에서 바로 반사하는 빛과 막을 통과한 뒤 안쪽 막에서 반사한 빛이 보강간섭을 하는 파장의 색이 보이는 것이다. 비누막에서 색이 일렁거리는 건 막의 두께가 변하면서 보강간섭을 파는 파장이 바뀌기 때문이다.

즉 거품은 액체막이 공기를 분할한 상태인데 막을 이루는 액체가 중력과 표면장력을 받아 아래로 흐르면서 막이 얇아지고 결국은 터지는 것이다. 물론 물리학자들은 이런 기본 메커니즘은 벌써 파악했지만 지금까지도 거품이 터지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밝히지 못한 상태였다. 즉 컴퓨터 그래픽으로 거품이 터지는 장면을 재현하려면 동영상의 각 프레임을 일일이 그려 이어 붙여야 한다는 말이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 3단계 해석

그런데 과학저널 '사이언스' 2013년 5월 10일자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수학자들이 거품이 꺼지는 과정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수식(미분방정식)을 만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이 수식의 변수에 특정한 값(액체밀도, 표면장력 같은)을 지정해주고 초기 조건을 정해주면 시간 경과에 따른 거품의 변화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것. 앞으로는 영와 CG에서 거품 장면을 연출할 때 엄청난 수작업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거품의 변화과정을 3단계로 나눴다. 첫 번째가 재배치기로 비눗방울 하나가 터진 뒤 불안정해진 거품 구조가 재배치되면서 안정을 찾는 단계다. 두 번째가 액체배수기로 겉보기에는 거품이 안정한 상태인 것 같지만 막의 물이 빠져나가면서 막이 얇아지는 단계이다. 세 번째가 파열기로 얇아진 막이 터지면서 거품 구조의 균형이 깨진다. 이후 다시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가 사이클이 반복된다.

이처럼 거품의 진화를 3단계로 나눈 건 모든 요소를 한꺼번에 고려할 경우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단계별로 변화를 재현할 수 있는 수식을 만든 뒤 이를 매끄럽게 이어 붙여 실제 현상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낸 것. 

연구자들은 이렇게 검증한 수식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거품이 꺼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했다. 막 위에 떠있는 거품이 소멸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 한 것으로 막의 두께에 따라 다른 색으로 표시해 두께 변화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즉 크고 작은 비눗방울 17개로 이뤄진 거품에서 먼저 막이 얇은 작은 비눗방울들이 터진다. 막이 터질 경우 원래 플라토 경계였던 자리의 막이 두꺼워짐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작은 방울이 터져 합쳐질 때의 급격한 요동으로 큰 방울이 터지기도 한다. 마직막 장면은 거품을 이루고 있던 방울들이 서로 떨어져 결국 네 개의 방울만 남은 상태를 보여준다.

영화 CG는 이런 식으로 거품을 재현할 것이다. 막의 두께가 일정한 비눗방울 27개가 모인 거품으로 출발했는데, 막을 이루는 액체가 빠져나가면서 6.4초일 때 첫 방울이 터지고 뒤이어 급격히 방울이 터지면서 거품이 꺼진다. 첫 방울이 터지고 비눗방울 3개가 남아있는데 걸린시간은 불과 0.2초가 걸렸다.

액체의 표면에 머무르다 하나둘 터지며 사라지는 거품. 그러나 몇몇 과학자들은 끈질기게 거품의 내면을 들여다봤고 마침내 놀라운 통찰력으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거품의 진화 과정을 몇 개의 수식으로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거품은 덧없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거품의 물리학은 영속하지 않을까.

벌초를 하거나 밤을 따다가 실수로 말벌집을 건드리면 큰일이 난다. 실제로 말벌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고가 생기기도 하는데, 전국적으로는 매년 수십 명이 말벌에 희생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 말벌떼의 공격을 받아 벌독의 작용으로 죽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되고 대부분은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라는 급성 전신 알레르기 반응으로 기도가 막혀 질식사 한 경우일 것이다.


사실 아나필락시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알레르기에 시달리고 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두려움에 떨게 하는 천식, 시도 때도 없는 재치기에 콧물이 줄줄 흐르는 알레르기성 비염, 너무 가려워 피가 날 때까지 벅벅 긁는 아토피성 피부염 등 증상도 다양하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 이제 열에 두세 명은 된다는 것이다.


기생충 가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위생 가설'이다. 현대인들은 위생상태가 너무 좋아 면역계가 할 일이 없어져 예전 같으면 신경도 안 쓸 꽃가루를 적으로 인식해 죽기살기로 달려들어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 이와 관련한 좀 더 구체적인 이론 하나가 바로 '기생충 가설'이다.


우리 몸에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을 퇴치하기 위한 '제1형 면역계'(독감백신은 이 면역계를 활성화한다)와 맨눈에도 보이는 벌레인 기생충을 퇴치하기 위한 '제2형 면역계'가 있다. 그런데 기생충을 잡으라고 있는 제2형 면역계의 오작동이 바로 알레르기라는 것이다. 제2형 면역계의 작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기생충이 분비하는 특정 단백질이 면역글로불린E(IgE)라는 항체에 달라붙으면 TH2림프구를 자극한다. 그 결과 TH2림프구는 더 많은 IgE를 만들고 여러 신호분자를 분비해 일련의 대응반응을 일으킨다. 즉 호산구라는 면역세포가 기생충을 공격하고 점막에 있는 배상세포가 증식해 점액을 많이 만들어 낸다. 한편 비만세포와 호염구라는 면역세포는 히스타민을 비롯해 여러 물질을 분비해 평활근 수축(기침), 가려움증(긁으면 이 같은 해충을 쫓는 효과가 있다)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오는날 웬만큼 사는 나라에서는 기생충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반면 미생물에는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제2형 면역계가 할 일이 없어져 알레르기가 만연하게 됐다는 것. 실제로 알레르기성 장염증질환을 고치는 방법으로 기생충을 먹는 요법이 실시돼 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토록 광범위한 알레르기가 단지 기생충을 통제하는 면역계의 오작동 결과일 뿐일까. 정말 그렇다면 우리 몸은 너무 엉성하게 진화한 게 아닐까.



학술지 '면역학' 2013년 10월호에는 알레르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시사하는 연구결과 두 편이 나란히 실렸다. 꿀벌의 독이 유발하는 알레르기 반응이 결국은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인데 비슷한 내용이므로 그 가운데 하나인 미국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의 루슬란 메디즈히토브 교수팀의 실험을 소개한다. 연구자들은 먼저 쥐에게 꿀벌 독을 약간 주입했다. 그 결과 벌독에 들어있는 포스포리파아제A2라는 효소가 제2형 면역계를 작동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포스포리파아제A2는 세포막을 이루는 인지질을 녹여내 결과적으로 세포를 파괴시키는 효소로 벌독뿐 아니라 여러 독의 주성분이다. 연구자들은 다음으로 치사량의 독을 위의 한 번 노출된 쥐와 대조군인 그렇지 않은 쥐에 주입했다. 그 결과 처음 독을 접한 쥐는 여럭 죽은 반면 한 번 노출돼 제2형 면역계가 활성화된 쥐는 살아남았다. 알레르기 반응으로 분비된 단백질분해효소가 포스포리파아제A2를 바로 파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아나필락시스라는 치명적인 알레르기 반응 역시 벌독에 대한 제2형 면역반응의 극단적인 형태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거부가 존재 이유인 세 가지 현상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마지 프로펫(Margie Profet)의 1991년 논문을 여러 차례 인용하고 있는데, 이 논문에서 알레르기를 독소에 대한 면역방어체계로 본 '독소 가설'이 처음 제안됐기 때문이다. 즉 이번 연구결과는 알레르기 독소 가설을 입증한 셈이다.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한 프로펫은 졸업 뒤 돌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에 입학한다. 이미 죽어버린 뇌의 '수학 영역'을 되살리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1985년 졸업을 한 프로펫은 웨이터로 일하면서 '생각해보고 싶었던 걸 생각해볼 시간을 갖기로' 하고 진화생물학을 혼자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날 물리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성학 세미나를 하던 저명한 독성학자인 브루스 에임스는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프로펫의 영민함에 깊은 인상을 받고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다 프로펫이 웨이터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에 놀라 그녀를 고용해 논문 편집 일을 맡긴다.

그런데 그 일 가운데 하나가 훗날 '에임스 테스트'로 불리는, 특정 물질이 암이나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방법을 다룬 작업이었다. 에임스 테스트에 관한 문헌을 정리하던 이 팔자 좋은 여인은 1986년 어느 날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임신 초기 입덧을 하는건 태아 형성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물질을 거부하려는 행동이라는 해석이다.

이렇게 시작된 인체의 거부 패러다임은 곧 알레르기로 이어진다. 즉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는 알레르기 역시 우리 몸에 들어온 해로운 물질을 내보내기 위한 거부의 몸짓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988년 어느 날 프로펫은 월경 역시 성관계 등으로 질내에 있을지 모를 유해한 물진(세균)을 배출하기 위한 메커니즘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렇게 '거부 3부작'의 개념이 완성됐다.

프로펫은 1988년 학술지 '진화이론'에 입덧이 기형유발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 했다는 가설을 담은 논문을 실었다. 에임스 교수의 작업도 마무리가 되고 돈이 떨어진 프로펫은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대 인류학과 박사과정을 등록하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괴로워한다. 이런 와중에 1991년 알레르기 독성 가설 논문을 '계간생물학리뷰'에 실었고 1993년 같은 학술지에 월경이 정자에 딸려온 병원균을 배출하는 방어기작이라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게재했다.

진화생물학 박사학윈는 커녕 학부수업도 제대로 받지 않은 30대 초반의 늦깎이 인류학도의 외도에 많은 생물학자들이 불쾌해했지만 20세기의 다윈이라는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조지 윌리엄스 같은 거장이 프로펫의 편을 들어주면서(월경 가설은 빼고) 프로펫은 맥아더재단이 주는 '천재' 장학금의 수여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제 의식주 걱정을 덜게 된 프로펫은 박사과정을 때려치우고 시애틀로 가서 워싱턴대에서 수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천문학과의 객원연구원 생활을 몇 년 한다. 1996년 한 잡지와 한 인터뷰를 보면 그녀는 이미 거부 3부작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이론이 되려면 좋은 실험이 따라야 하는데 자신은 "실험에 재능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2000년 여전히 맥아더 장학금으로 생활하고 있던 프로펫은 다시 하버드대로 돌아와 수학을 공부했는데 당시 이미 정신저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지인들은 회상했다. 결국 프로펫은 2005년 무렵 홀연히 사라졌고 누구도 그녀의 생사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2012년 월간지 '심리학 투데이' 5월에 프로펫을 다룬 장문의 기사가 실렸고, 얼마 뒤 보스턴에서 가난과 질병에 피폐해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5월 16일 프로펫은 가족(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1993년 맥아더 천재 장학금 수상자로 선정된 뒤 프로펫은 한 인터뷰에서 "역사를 거슬러보면 진짜 뛰어난 과학자들은 다 부적응자였다"며 "과학성과가 나오는 한 부적응자로 사는 것도 좋다"고 말한바 있다. 2000년대 들어 프로펫의 방황은 과학성과가 나오지 않은 결과였을까. 아무튼 프로펫의 거부 3부작 가운데 입덧 가설은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고 알레르기 가설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다시 알레르기 얘기로 돌아가서 이번에 벌독 실험 결과를 낸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 루슬란 메디즈히토브 교수는 2012년 학술지 '네이처'에 방어체계로서의 알레르기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논문을 기고했는데, 이에 따르면 제2형 면역계는 크게 네 가지 유형의 환경 위협으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기 위해 진화했다.

즉 기생충, 독성 비생체성분(xenobiotics), 독과 흡혈체액(모기 타액 같은), 자극유발물질(매연 같은)이다. 이 가운데 기생충을 제외한 나머지 세 유형, 즉 제2형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비감영섬 환경자극을 뭉뚱그려 알레르기유발물질(allergens)이라고 불러왔던 것. 그런데 우리 몸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이런 물질들이 과연 인체에는 해가 없는 것일까.

새집증후군으로 아토피가 심한 아이들을 시골의 나무집에 보내면 증상이 사라지는데,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이 몸에 유해한 작용을 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알레르기 하면 꽃가루를 생각하고 알레르기가 몸에 무해한 물질에 대한 면역계의 오작동이라고 간주해버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늘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의 상당수는 정말 몸에 해로운 것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레르기 독소 가설을 따라가면 평소 알레르기 증상이 없는 사람들은 몸에 독소가 많이 쌓여 그로인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과연 그럴까. 미국 코넬대의 저명한 신경생물학자 폴 셔먼과 아내인 진화생물학자 자넷 쉘먼-셔먼은 1953년 이후의 논문을 뒤져 알레르기와 암의 관계를 조사했다. 발암물질이야말로 대표적인 독소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놀랍게도 알레르기와 암발생이 서로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인체에서 외부와 닿아있는, 즉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인 입과 목, 대장, 피부, 폐 등에서 이런 관계가 두드러졌다.

평소 주위에서 알레르기로 시달리는 사람을 보면서 '안됐다'라거나 '까다롭기는...'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독소도 분별할 줄 모르는 '둔감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면 어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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